책/신앙

급변하는 직업 세계와 직장 속의 그리스도인 / 방선기 / IVP

dobbby 2024. 1.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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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직업 세계와 직장 속의 그리스도인 / 방선기 / IVP

서론 
그리스도인에게 ‘일’은 무엇인가

- 현 시대에 교회의 모습은 고속도로를 달려야 할 차가 고속도로 휴게실에 머무는 것과 같고,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실어 나르며 작접을 수행하는 군함이 아닌 유람선이 된 것과 같다. 

- 교회는 예배드리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라는 것과 
  성도들이 예배당안에 있을 때에만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을 떠나 세상 속에서 일할 때에도 여전히 교회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인 교회’와 ‘흩어진 교회’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다른 점을 드러내는 것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청기지 정신은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가정과 지역사회, 나라, 세계등 사회 전박의 영역을 다 포괄한다. 
   우리가 일하는 목적을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돈에 대한 청지기 
   a. 돈을 버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 기원전 8-9세기 호머는 인간을 미워한 신이 앙심을 품고 인간을 고생시키기 위해 고안한 것 
   -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익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의 삶에 기본적인 행위고, 일은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하나님의 허락한 도구이다.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는 시도가 아닌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필요를 채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b. 돈의 유혹을 이기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 돈은 일의 결과이며 열매이지만, 돈의 힘이 워낙 강하기에 돈 자체가 목적이 되기 쉽다.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돈은 중립적이다. 
   - 일의 중요한 열매 중 하나인 연봉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자신이 일한 만큼 보상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불평하게 되면 돈을 버는 과정에서 죄를 짓기 쉽다. 
   - 돈의 영적측면을 이해하고 바른 자세로 돈을 대해야 한다. 

   c. 돈에 자족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 우리나라는 3교(교육, 교통 동신, 교제) 비용을 조줄하면 합리적인 지출을 할 수 있따. 
   -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빚을 지고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검소한 생활은 
     첫째, 경제적인 차원에서 절약은 개인적, 가정적, 국가적으로 필요한 덕목
     둘째, 윤리적인 차원에서 가난한 이웃이 상대적인 빈곤을 느끼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셋째, 영적인 차원에서 검소한 생활은 물질이 필요를 넘어 우상이 되지 않고 자유롭게 주님을 섬길 수 있다. 
   - 검소한 생활의 구체적인 표현은 그 사람이 처한 문화적, 경제적 상황과 개인의 은사에 따라 다르기에 획일화된 기준을 요구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2) 일에 대한 청지기
   a. 유익을 끼치는 일이 의미가 있다. 
   - 에리히 프롬은 소유적 실존 양식과 존재적 실존 양식으로 삶의 방식의 두 가지 모습을 설명하였다. 
   - 소유적 실존 양식은 돈과 재산을 중심으로 지식과 지위, 권력과 같은 소유에 전념하는 삶의 방식이다. 
   - 존재적 실존 양식은 지적 창조력이나 이성, 사랑과 같은 존재적 가치를 두는 것이고, 이는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됨으로 자신의 고립을 극복하려는 타고난 욕구에서 나온 성향이다. 
   - 에이브러햄 매슬로 : 생리적 -> 안전 -> 소속감과 애정 -> 존경 -> 자아실현의 욕구!!
   -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보람이 되듯이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사회와 이웃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 
  
   b.자신에게 맞는 일이 의미가 있다. 
   -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일은 객관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기질과 재능에도 맞아야 한다. 
   - 페리드릭 뷰크너 : 라틴어 보카레(vocare),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명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여야 하고 세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그리스도인 답게 헌신의 열정으로만 덤비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듯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도 말아야 한다. 
   - 내가 좋아하는 일이 세상의 필요에 부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c. 일과 인식이 균형을 이룰 때 의미가 있다. 
   - 일이 중독이 되지 않도록 안식을 취해야 한다. 
   - 안식의 개념이 단순히 정기적인 휴식을 통해 육체를 재충전하여 일터로 나아가는 것을 넘어서 있다. 
   - 안식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다. 헤셸은 하나님의 세 가지 행위를 안식에 하셨는데, 쉬셨고, 복되게 하셨고, 거룩한 날로 삼으셨다(창2:2-3) 노동 금지에 즐거운 강복과 거룩함을 강조하였다!!

 3) 하나님의 청지기 
   a.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다
   - 청지기로 일하는 목적으로 돈과 의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근복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바로 사명이다.
   - 하나님의 형상 : 고대 세계에게 왕들이 자기가 정복한 땅에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었던 것
                            정복자인 왕들이 자신들의 형상으로 총독들을 임명하였고, 총독들의 판결과 얼굴 표정과 명령은 정복지의 백성들에게 멀리 있는 왕의 판결과 표정과 명령을 의미했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사명을 부여하셨고, 이 사명은 구체적인 일과 관련이 있다. 

   b. 모든 일을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한다. 
   - 사도 바울은 (골3:22-25, 엡 6:5-8)에서 로마 사회에서 노예들이 하던 일에도 존엄성을 부여한다. 
   - 노예들은 가정의 고되고 단조로운 일을 해야 했는데, 타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노예들에게 직업을 바꾸라고 하기 보다는 일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권면하였다
   -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과 연관된 의무감과 책임의식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표현하였다. 
   -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직을 받았지만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셨다고 바았기에 이방인들 덕택에 사도가 된 것이다. 바울의 빚진 자 의식은 비단 선교의 동기 뿐 아니라 직업의 동기로도 적용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종으로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섬겨야 한다. “눈가림만”으로 만 하지 말고 
   - 결국 우리가 주님께 하듯 하는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같다. 

   c. 모든 일을 하나님처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
   - 1세기 노예들이 이방인 주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일터에서 우리의 궁극적 상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듯 믿지 않는 고용주들을 위해 일하기란 쉽지않다. 
   -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 상사이신 예수님이 천국상급을 약속하셨다!! 

 


일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 
   -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셨을 뿐 아니라 거기서 큰 기쁨을 누리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꾼들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 창조께서 낙원에 일을 두셨다는 사실은 노동을 필요악이나 심지어 징계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겐 놀라운 진리이다. 노동은 하나님의 정원에 존재했던 축복의 일부다. 일은 음식, 아름다움, 쉼, 우정, 기도, 섹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 성경은 생존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을 넘어서 의미를 추구해야 하며 나아가서 자신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남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 일을 통해 저마다 가진 특별한 능력과 은사를 파악하게 되고 그게 정체성 확립에 핵심 요소라는 점을 감안 할 때에 노동은 자아 발견의 주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 도로시 세이어 “일을 보는 기독교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이의 능력을 최대로 표현하는게 곧…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이며 반드시 그리되어야 한다”

 


일에 대한 오해 
   - 그리스 철학자들의 노동에 대한 생각이 그리스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모든 일이 동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몸이 아니라 정신에 유익한 일이 더 고상하며 덜 동물적이라 믿었고, 몸을 적게 움직이고 최대한 왕성하게 움식이는 부류를 가장 고상한 일로 여겼다. 엘리트들이 예술과 철학, 정치를 통해 정신을 수련하는데 전념하도록 노예와 직인들이 노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 성경은 일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셨고 인간이 주님을 대신해서 하는 행위이기에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일 자체가 존엄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이 고귀하다고 말한다. 창세기 1-2장에서 창조주가 하신 일은 흙으로 인간을 빚어내고, 신중하게 몸에 생기를 불어 넣고, 정원을 만드는 ‘육체 노동’이었다. 

    -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자 - 왕일꺼라 생각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정의롭고 고상한 정치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 땅에 임하신 하나님은 어떠셨는가? 목수로 오셨다. 
   - 몸으로 하는 단순한 노동도 신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활동과 조금도 다름 없는 ‘하나님의 일’이다. 

   * 청소 : 누군가 고용해서 집 안을 치우지 않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번식하고 결국 감염되어 앓아눕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다. 창조주는 물질세계를 지으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을 통해 개발하고 양육하고 보살피게 하셨다. 

   - 인간은 노동하도록 지음을 받았으며 지위나 급여와 상관없이 일은 인류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실이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대하다. 이 원리를 제대로 깨닫고 나면 은사와 열정을 좇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체면과 우월감이 사라지고 질투나 상대적 박탈감도 사라진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개척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확신과 만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일을 하는 의미와 목
   -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에 대해서 혁신적인 통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니님이 불러서 과업을 맡기셨다는 사실 자체가 힘을 주므로 자아를 실현하고 권력을 얻을 속셈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일을 대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도구로 보아야 하고 그 목적을 따라 직장을 선택하고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다. 

루터의 의신칭의가 일을 바라보는 시작을 바꿈
   - 저마다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일의 의미를 바라보는 시각을 포함해서 성경의 가르침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그 중 두가지 점을 주목할 수 있는데, 첫째 종교적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면 교회에서 목회하는 교직자들과 그 밖의 일을 하는 이들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행위가 하나님의 사랑을 얻는데, 한 터럭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다른 노동보다 조금도 우월할 게 없다. 
   - 둘째, 대다수 현대인들 직업적 성공에서 구원(자존감과 자부심)을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높은 보수와 지위를 보장하는 자리에 연연하며 비뚤어진 방식으로 그런 일들을 ‘섬기게’되었다. 그러나 복음은 일에 기대어 자신을 입증하고 정체성을 지키라는 압력에서 해방시켜준다. 이미 인정받고 안전해졌으므로 다리 애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순히 노동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와 고상해 보이는 일거리를 부러워하는 마음가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제 일은 종류와 상관없이 인류를 값없이 구하신 하나님과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된 까닭이다. 

능숙함으로 일하라
   - 일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능숙한 사역’이다. 하나님이 일을 주신 목적이 인간 공동체를 섬기게 하는데 있다면 그 뜻을 받드는 으뜸가는 길은 주어진 과업을 끝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능숙한 솜씨는 곧 사랑의 표현’이다. <불의 전차> 주인공 에릭 리델의 아버지는 선교사답게 아들을 타이른다 “완벽하게 해내기만 한다면, 감자껍질 벗기는 일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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